詩心의 향기/시詩(필사)

오래된 시집 / 이인원

폴래폴래 2019. 9. 12. 16:44



   오래된 시집


                          이인원



 비행기가 시야에서 멀어질수록

 승객의 몸도 작아진다고 믿는 아이의 마음으로


 두근두근 이 시집을 샀었다

 정독 한 번 못하고 그냥 꽂아뒀던


 인구에 회자되던 구절

 오히려 낯설다


 카카오 톡 선물하기로 보낸

 공중을 날아다니는 커피 잔들처럼


 동체와 함께 사라지지 못한 승객 하나


 이륙과 착륙 사이 110쪽을 비행하는 동안

 작고한 저자보다 더 노인이 됐다


 16쇄 당시 이 직항노선의 탑승료는 2000원

 50원어치의 하늘을 향해 50원어치만 웃는 것이 기교주의技巧主義

 자조적 이성理性의 향기는 무료제공 서비스


 다 식은 커피 한 모금이 혀에 착 감기는 저녁

 오래된 시집의 바로 그런 맛.


 *오규원 시 「커피나 한 잔」에서



 『문학과 창작』2019년 가을호



 1952년 경북 점촌 출생. 숙명여대 졸업. 1992년 <현대시학>등단

 시집<마음에 살을 베이다><사람아 사랑아><빨간 것은 사과><궁금함의 정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