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앵두가 왔다 / 한영수

폴래폴래 2018. 9. 11. 05:06





          앵두가 왔다



                                -한영수


 첫물 앵두 한 줌을 두 손으로 받은 스케치와 함께

 우체국 소인이 찍힌


 나의 앵두는 오래되었다

 높아졌다 낮아졌다

 열두 번의 소리 고비를 넘은

 말 없는 그 말을

 그냥 알아들었다


 부처가 가섭에게 전한

 빈자리가 많은

 그 옛말로

 알고 있는 빛깔을

 처음 보는 빛짤로 바꾸어서


 앵두를 부정하려 들지도 않고

 앵두와 거래하려 들지도 않고

 앵두가 되려 하지도 않고


 나는 앵두를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앵두를 바라보는 눈동자와

 그리는 손가락은 볼 수 있다


 시간의 지층에 밟혀도

 꺼지지 않는 색감


 앵두가 왔다

 에움길을 열고 사흘을 돌아

 우체통으로


 어떤 말은

 혀끝에 올리면 부서져 버린다



 시집『눈송이에 방을 들였다』파란, 2018



 -전북 남원 출생. 2010년<서정시학>으로 등단

  시집<케냐의 장미><꽃의 좌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