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어느 창문 애호가의 방 /권현형

폴래폴래 2018. 6. 25. 14:31




            어느 창문 애호가의 방



                                              -권현형 


     무화과나무의 가장 높은 곳은

     특별한 허공

     그곳에서 숨을 쉬어본 후 나무에

     올라가는 걸 멈출 수 없었다


     창밖을 끝없이 내다보다가

     모르는 목소리에게 야단을 맞았다

     "일하지 않고 뭐하니"

     말보다 공기가 무거웠다


     또 하나의 단편은 세밀화로 그린

     작은 상자 속에서 살았던 꿈

     누가 부엌을 눈동자처럼 파 넣었을까

     부엌이 없는 지하 단칸방을 구했는데

     나중에 다시 가보니

     없는 길처럼 없는 부엌을 그려 넣었다


     작은 상자 속 작은 상자 속 작은 상자

     선이 살아 있는 부엌이 고맙고 좋았다

     동굴 속 불빛 같은

     부엌과 책상을 믿지 못해 계속 뒤돌아보았다


     분명 내가 거기에 있었나

     창문 없는 심연처럼 거기에 있었나

     피가 고여 있는 작은 상자를 길게 빠져나왔다



     시 전문 무크지 Moment 제3권, 2018년 5월



     -1966년 강원도 주문진 출생. 1995년 시와시학으로 등단

     시집<중독성 슬픔><밥이나 먹자, 꽃아><포옹의 방식>

     현재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숙명여대 출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