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개와 고양이 / 이승예

폴래폴래 2017. 6. 10. 11:27






           개와 고양이



                                         - 이승예   



  그가 두른 행주치마에서 물 묻은 글자가 자라고 있다

  love!


  내게 그 거리는 얼마나 가슴 설레였던가

  두 발을 딛어야 비로소 직성이 풀리는 곳을 눈앞에 두고

  거리는 늘 빗장을 질렀다


  그곳에 고양이가 모로 누워 있었다

  짐승이 모로 누워 있다는 것은 생의 빗장을 영 질렀다는 것,


  속절없이 오가는 차들도 최대한 따뜻한 온도를 유지하고

  거리가 요구하는 이별의 속도로 가는데


  개는 지금 고양이가 되고 싶은 거다


  사랑을 발음해 봐

  잇새에 쌓인 치석에 긁힌 모음이 사랑인가

  옆구리 어디쯤 긁혀 있어야 사랑인가

  살아있는 한 헤어지지 말자*는 말은 너무 상투적이다

  나쁜 땅에는 발도 붙이지 못하게 하는 악의 외도처럼


  사랑은

  앞치마에서 자주 물이 묻은 채 늙는다


  그곳에서 걸어 나오지 못한 개는

  고양이가 되지 못한다

  고양이의 그리움이 검은 개로 서 있다


  개와 개라는 말보다

  고양이와 고양이라는 말보다

  개와 고양이라는 말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밀 그랜을 상징하는 반지를 끼고 싸르트르 곁에 묻힌

  보부아르의 사랑!


  완고하게 빗장을 지른 거리에,

  검은 개 보부아르가 바라보는 거리에,

  싸늘하게 식은 고양이 싸르트르가 누워 있다



  *싸르트르와 보부아르의 계약결혼에서 인용




  시집『나이스 데이발견시선  2017년6월



  1963년 순천 출생. 2015년『발견』으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