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와 고양이 / 이승예
개와 고양이
- 이승예
그가 두른 행주치마에서 물 묻은 글자가 자라고 있다
love!
내게 그 거리는 얼마나 가슴 설레였던가
두 발을 딛어야 비로소 직성이 풀리는 곳을 눈앞에 두고
거리는 늘 빗장을 질렀다
그곳에 고양이가 모로 누워 있었다
짐승이 모로 누워 있다는 것은 생의 빗장을 영 질렀다는 것,
속절없이 오가는 차들도 최대한 따뜻한 온도를 유지하고
거리가 요구하는 이별의 속도로 가는데
개는 지금 고양이가 되고 싶은 거다
사랑을 발음해 봐
잇새에 쌓인 치석에 긁힌 모음이 사랑인가
옆구리 어디쯤 긁혀 있어야 사랑인가
살아있는 한 헤어지지 말자*는 말은 너무 상투적이다
나쁜 땅에는 발도 붙이지 못하게 하는 악의 외도처럼
사랑은
앞치마에서 자주 물이 묻은 채 늙는다
그곳에서 걸어 나오지 못한 개는
고양이가 되지 못한다
고양이의 그리움이 검은 개로 서 있다
개와 개라는 말보다
고양이와 고양이라는 말보다
개와 고양이라는 말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밀 그랜을 상징하는 반지를 끼고 싸르트르 곁에 묻힌
보부아르의 사랑!
완고하게 빗장을 지른 거리에,
검은 개 보부아르가 바라보는 거리에,
싸늘하게 식은 고양이 싸르트르가 누워 있다
*싸르트르와 보부아르의 계약결혼에서 인용
시집『나이스 데이』발견시선 2017년6월
1963년 순천 출생. 2015년『발견』으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