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나비 두 마리 / 김광규

폴래폴래 2016. 2. 14. 12:49






         나비 두 마리



                                        - 김광규


   빨래 말미도 없이

   한 달 내내 쏟아지는 장맛비에

   주황색 능소화

   아깝게 뚝뚝 떨어졌다

   검은 구름 동쪽으로 몰려가고 겨우

   앞산의 모습 나타나고 잠시

   비가 멎었을 때

   그동안 어디 숨어 있었니 하얀

   나비 두 마리

   안쓰럽게 나풀나풀

   잡초 우거진 채마밭으로 날아간다

   장마철에 잘못 태어나

   축축하지 않니

   해도 못 보고

   꽃도 못 찾고

   금방 땅으로 떨어질 듯

   서투르게 나풀나풀 날아가는

   하얀 나비 두 마리

   풋사랑 이루지 못하고 비 맞으며

   사라지는 어린 영혼들인가




   시집『오른손이 아픈 날』문지 2016




   -1941년 서울 출생. 서울대 동 대학원 독문과 졸업. 뮌헨에서 수학.

    1975년<문학과지성>으로 등단. 시집<우리를 적시는 마지막 꿈>

    <아니다 그렇지 않다><크낙산의 마음><좀팽이처럼><아니리><물길>

    <가진 것 하나도 없지만><누군가를 위하여><처음 만나던 때>

    <시간의 부드러운 손><하루 또 하루>. 녹원문학상, 김수영문학상,

    편운문학상, 대산문학상, 이산문학상, 시와시학 작품상 등 수상.

    한양대 명예교수(독문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