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9와 4분의 3 승강장* / 정지우

폴래폴래 2016. 1. 5. 12:03

 

 

 

 

 

           9와 4분의 3 승강장*

 

 

                                                      - 정지우

 

 

   선풍기를 틀어놓고 외출했다 들어온 저녁, 그림 속 여자의 머리끝이 흩날리고 있었다.

 

   아나운서는 지하철에 뛰어든 사람을 담담하게 보도하고 있었다. 목격자만 있는 그 사람도 승강장을 찾고 있었는지 추락은 한 발자국 들어가 있었다. 들어간 만큼 뒤로 밀려나오는 핏자국이 다음 역으로 가는 제의처럼 집안을 가득 채워갈 때

 

   열려있는 새를 운명으로 보는 날이 있을 것이다.

 

   벽 속으로 들어간 것을 아무도 본 일이 없지만 흔적은 선(先)에 없고 반질반질한 혹은 조금 들어간 후(後)에 있다.

 

   그는 다니던 학교에서 마법을 배우려고 했는지도 모른다.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만드는 세계에서 벽을 밀고 밀면 자라나는 방들, 가능성의 빗자루를 타고 꽁지의 추진력을 얻으려 했는지도 모른다.

 

   왜 기차의 첫머리를 향해 뛰어드는지 한 번도 선두를 유지해본 일이 없는, 어쩌면 너무 멀리 간 선두(先頭)를 만난 건 아닌지 앞서 간 사람의 뒤를 보고 있다가

 

   열차가 지나가자 나는 움찔 뒤로 물러선다. 분명 몇 사람이 열고 들어간 적이 있는 훅, 하고 그림 밖으로 머리카락이 날리는 역을 지난다. 이동과 소멸의 구분은 후미(後味)에 있다는 듯이 선로의 맨 끝에 누워 있는 세상을 향해 바람이 분다.

 

 

   *해리포터에 나오는 런던의 킹스크로스역

 

   『시작』2015년 가을호.

 

 

 

   -1970년 전남 구례 출생. 경희사이버대 문창과 졸업. 2013년<문화일보>신춘문예 당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