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물방울의 회화 / 정지우

폴래폴래 2015. 8. 11. 16:57

 

 

 

 

 

               물방울의 회화

 

 

                                                     - 정지우

 

   물방울은 물의 뒤 끝이다

   빨랫줄에서 고이는 화석의 투명한 속도다

 

   옥상은 계단의 속도를 붙들고 있다

   계곡에 불어난 물 위의 텐트처럼

   언덕 위의 일들이 언덕 아래로 떠내려가는

   환풍기가 돌아가는 벽은 물소리만 흐른다

 

   눈을 감았다 뜨면 잠깐의 화석이

   물방울 속에서 증축된다

   각인된 각도가 건축의 높이를 만들어갈 때

   말라가고 있는 옷들은 화창한 날에 입어보던

   뼈의 물결들

 

   집의 이동으로 뼈들은 철골처럼 단단해진다

   사람이 살아가는 느낌으로 빗물이

   외벽을 씻겨 내려가며 집을 벗고 입는다

 

   수억의 물방울을 옮기며 번성하는 도시가 있다

   물탱크를 올린 가옥들

   오르내리는 발자국이 물방울로 맺혔다 사라진다

   뚝 뚝 낙숫물 떨어지는 소리에

   외투를 벗고 몸을 누이면

   창문과 창문은 마주보는 천구(天球),

   헌집을 부수고 다시 짓는 동안

   폐허는 물방울로 이루어진 표면장력일 뿐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도시는

   수직적으로 범람하는 물의 바벨탑이다

 

 

 

   -1970년 전남 구례 출생. 경희사이버대 문창과 졸업.

     2013년<문화일보>신춘문예 당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