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백한 번째의 밤 / 송찬호

폴래폴래 2015. 6. 23. 14:04

 

 

 

 

 

        백한 번째의 밤

 

                                              - 송찬호

 

  촛불 세 자매는 밤을 맞을 채비를 했다

  식탁을 치우고

  은접시를 닦고

  아궁이 불을 꺼뜨리고

  동면에 들어갈 벌들에게 캄캄한 꿀을 먹였다

 

  이윽고 밤이 찾아왔다

  커튼이 드리워지고

  문들은 굳게 닫혔다

  현관엔 무거운 쇠구두가 가지런히 놓여 있고

  문밖 매어둔 나무염소도 꿈쩍 않고 서 있었다

 

  촛불 자매들은 나직나직이 일렁거리며

  불의 수의를 짰다

  피투성이 재투성이 밤의 어깨와 허리 치수를 재어가면서

  그리고, 이런 노래를 불렀다

 

  어디선가 싸움은 그치질 않고

  기다리는 사람은 아직

  돌아오지 않고 있어라

  아득하여라,

  앞날을 보지 않기 위하여

  우린 밤의 눈을 찔렀네

 

 

   『시인동네』2015년 여름호

 

 

 

   -1959년 충북 보은 출생. 1987년<우리 시대의 문학>으로 등단.

     시집<흙은 사각형의 기억을 갖고 있다><10년 동안의 빈 의자>

     <붉은 눈, 동백><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