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은 우는 것이다 / 이문재
촛불은 우는 것이다
- 이문재
1
심지가 타버리면 촛불은 죽는다
굴대가 구르면
바퀴가 구를 수 없는 것과 같다
불꽃은 제 심지가 견디는 만큼만 불꽃이다
촛불의 시간은 제 심지의 시간이고
심지의 길이는 촛대의 길이이다
어둠의 둥근 가장자리에까지
촛불의 온도가 가만히 스며든다
2
촛불은 꺼질 때 심지의 끝을 풀어헤쳐
푸르고 긴 연기를 피워올리는데
떠나간 불꽃에게 기별하는 것이다
다시 촛불을 켤 때
떠나간 불꽃의 마지막으로 하여금
뒤따라간 연기의 길을 타고
내려오도록 하는 것이다
다시 돌아선 불꽃의 마지막이
막 녹기 시작하는
초의 눈물을 빨아대는 것이다
남아 있어야 하는 사람이
떠나가는 사람의 뒷모습을
아주 오랫동안 지켜보는 까닭을
이제 아시겠는가
3
촛불은 하늘을 우러러 낮아진다
초가 불꽃 아래로 제 몸 밖으로
자꾸 눈물을 흘리는 까닭은
천상을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제 몸이 낮아지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촛불은 떨어지는 물방울
중력을 이기지 못하고 낙하하는 물방울이다
어둠 속에서 누군가 스스로 밝아져
한 칸씩 낮아지고 있다
서로 아득해지고 있다
시집『제국호텔』문학동네 2004
-1959년 경기 김포 출생. 경희대 국문과 졸업.
1982년 <시운동>으로 등단. 시집<내 젖은 구두 벗어 해에게
보여줄 때><산책시편><마음의 오지> 등
김달진문학상, 시와시학 젊은 시인상, 소월시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