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촛불은 우는 것이다 / 이문재

폴래폴래 2015. 3. 19. 15:12

 

 

 

 

 

 

 

      촛불은 우는 것이다

 

                                           - 이문재

 

      1

 

  심지가 타버리면 촛불은 죽는다

  굴대가 구르면

  바퀴가 구를 수 없는 것과 같다

  불꽃은 제 심지가 견디는 만큼만 불꽃이다

 

  촛불의 시간은 제 심지의 시간이고

  심지의 길이는 촛대의 길이이다

 

  어둠의 둥근 가장자리에까지

  촛불의 온도가 가만히 스며든다

 

 

     2

 

  촛불은 꺼질 때 심지의 끝을 풀어헤쳐

  푸르고 긴 연기를 피워올리는데

  떠나간 불꽃에게 기별하는 것이다

  다시 촛불을 켤 때

  떠나간 불꽃의 마지막으로 하여금

  뒤따라간 연기의 길을 타고

  내려오도록 하는 것이다

  다시 돌아선 불꽃의 마지막이

  막 녹기 시작하는

  초의 눈물을 빨아대는 것이다

 

  남아 있어야 하는 사람이

  떠나가는 사람의 뒷모습을

  아주 오랫동안 지켜보는 까닭을

  이제 아시겠는가

 

 

     3

 

  촛불은 하늘을 우러러 낮아진다

  초가 불꽃 아래로 제 몸 밖으로

  자꾸 눈물을 흘리는 까닭은

  천상을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제 몸이 낮아지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촛불은 떨어지는 물방울

  중력을 이기지 못하고 낙하하는 물방울이다

 

  어둠 속에서 누군가 스스로 밝아져

  한 칸씩 낮아지고 있다

  서로 아득해지고 있다

 

 

 

  시집『제국호텔』문학동네 2004

 

 

 

  -1959년 경기 김포 출생. 경희대 국문과 졸업.

   1982년 <시운동>으로 등단. 시집<내 젖은 구두 벗어 해에게

   보여줄 때><산책시편><마음의 오지> 등

   김달진문학상, 시와시학 젊은 시인상, 소월시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