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의 오솔길/신인상

2015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폴래폴래 2015. 1. 4. 13:38

 

 

 

  선수들

 

                                      -김관용   

 

전성기를 지난 저녁이 엘피판처럼 튄다

 도착해보면 인저리타임

 목공소를 지나 동사무소, 골목은 늘 복사된다

 어둑해지는 판화 속에서 옆집이라는 이름을 골라낸다

 옆집하고 발음하면 창문을 연기하는 배우 같다

 보험하는 옛애인이 전화한 날의 저녁은

 폭설과 허공 사이에서 방황하고

 과외하는 친구의 문자를 받은 날 아침은

 접시 위의 두부처럼 무심해진다

 만약이라는 말에 집중한다

 만약은 수비수 두세 명은 쉽게 제쳤으며

 늘 성적증명서보다 힘이 셌다

 얇은 사전을 골라 가장 극적인 단어를 찾는다

 아름다운 지진이란

 지구의 맨 끝으로 달려가 구두를 잃어버리는 것

 멀리 있는 산이 침을 삼킨다

 하늘에선 땅을 잃은 문장들이 장작 대신 타고

 원을 그리며 날던 새들의 깃털이 영화로 떨어진다

 원점은 어딘가 빙점과 닮았다

 양철 테두리를 한 깡통처럼

 전력을 다해 서 있는 트랙처럼

 잠시라도 폼을 잃어선 안 된다

 

 

  - 1970년 서울 출생. 1997년 울산대 철학과 졸업

     동국대 대학원 불교학과 졸업, 현)박사과정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