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비밀 / 신철규
폴래폴래
2014. 6. 13. 12:40
비밀
- 신철규
비밀이 많은 자는 늙지 않는다
얼굴에 주름이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비밀은 비좁고 빽빽하다
무덤 속까지 비밀을 안고 간 사람들
무덤을 뚫고 솟아나오는 칼들
X-ray를 찍기 전에 숨을 멈춘다
비밀을 발설하기 전에는 언제나 숨을 멈추는 순간이 있다
그는 청문회에서 당당하게 선서를 거부했다
그의 얼굴은 단단해지고 두꺼워졌다
뼈가 튀어나올 것처럼 입을 다물고 있었다
방부제 속에 담긴 혀
나의 머릿속에는 못이 박혀 있지도 않았고
뱃속에 수술용 가위가 덩그러니 놓여 있지도 않았다
차 트렁크 위에 핸드백을 뒤집어엎어 놓고 열쇠를 찾는
여인처럼 나는 무언가를 헤집고 싶다
나의 발밑에는 거대한 공룡의 뼈가 누워 있고
지각 아래에는 뜨거운 용암이 흘러간다
우리는 비밀스럽게 만들어지고 공공연하게 사라진다
전투기가 구름의 탯줄을 끌고 서쪽으로 날아간다
천천히 늘어지는 시간
심장이 스멀스멀 오른쪽으로 옮겨간다
투서(投書)처럼 새들이 솟아올랐다
『시와 표현』2014년 봄호
-1980년 경남 거창 출생. 고대 대학원 국어국문학 박사.
2011년<조선일보>신춘문예 당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