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지퍼 위에 단추 달기 / 권행은
폴래폴래
2014. 6. 13. 12:21
지퍼 위에 단추 달기
- 권행은
지퍼가 달린 셔츠를 샀다
어느새 단추 때문에 허둥대는 나이가 되어
단추 달린 옷보다 지퍼 달린 옷이 편하다
외출 할 때
모자를 쓰고 지퍼를 올리면
가슴 저쪽 끝에서 희미하게 달려오는 기차
어린 시절 신작로에
철로가 깔렸을 때
호기심을 열고 닫았던 기찻길이 보인다
그 시절 내가 입던 옷에는
수많은 단추들이 달려있었는데
외출했다 돌아오면, 단추 한두 개는
무단으로 가출하여
엄마한테 꾸중을 듣기도 하였다
커가는 사춘기의 테두리를 감추느라
단추들은 또 얼마나 가슴 조였던가
그 때마다 마음을 결단하듯 단추를 잠그던 구멍들
이제 내 옷에는
단추 대신
지퍼가 달리기 시작했다
정겹던 시골길의 징검다리가 사라졌다
맑은 개울 물소리가 그리워져
편해진 지퍼 옷 위에
유년을 들추어 단추를 단다
더는 구멍이 필요 없어진 단추들을
밤하늘의 별자리 더듬듯 눈빛으로 만진다
엄마 가슴에 남아있던
두 개의
까만 단추가
칸칸의 시간을 매달고 얼룩이 푸른 구멍 속으로 달려가고 있다
『미네르바』2014년 봄호
-2006년<미네르바>로 등단
2013년<영주신문>신춘문예 당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