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가장 맑은 늪 / 박연준

폴래폴래 2014. 2. 3. 12:56

 

 

 

 

 

 

 

   가장 맑은 늪

 

                                         - 박연준

 

 

 바알세불*

 딱딱한 의자를 유혹하고 싶어

 네가 내 사과를 베어물었니?

 하루살이들이 자살한 절벽 아래

 보랏빛 피들이 깨어나고 있어

 물결, 물결,

 그들의 아우성이 뱀을 몰고 올까?

 바알세불 내 목을 따줘

 난 언제나 저녁이야

 시무룩하게 어둡지

 

 내가 파놓은 무덤 자린

 순백의 토끼들을 위한 거였어

 그곳에 사정(射精)해

 토끼들과 어울려 봄을 피워봐

 손가락 끝에서 느릿느릿

 떨어지는 시간을 주워 먹어봐

 즙이 된 축축한 기억들을 마셔봐

 

 못생긴 사과를 먹고 단잠 잤더니

 나무의 거대한 직립,

 굳게 일어선 사랑의 윤곽이

 강렬해

 부끄러워

 가지 끝 열매들

 뭉개진 달

 그의 성기 끝에 매달린 내가

 휘청휘청 저문다

 

 

 *신약성서에 나오는 사탄의 별명. 귀신의 왕.

 

 

  시집『아버지는 나를 처제, 하고 불렀다』문학동네 2012

 

 

 - 1980년 서울 출생. 동덕여대 문창과 졸업.

   2004년 중앙신인문학상 당선.

   시집<속눈썹이 지르는 비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