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해변 / 조용미

폴래폴래 2014. 1. 21. 12:19

 

 

 

 

 

 

          해변

 

 

                                               - 조용미

 

 해변으로 들어가는 문은 열려 있다

 저 안으로 걸어 들어가는 발걸음은 누구의 것인가

 바다를 안으로 두고 가만히 닫아 놓은 문은

 어느 순간 살며시 열리기 마련이다

 

 파도는 가지런했고 모래밭엔 갈매기들이 드문드문했다

 저 낯선 방문객을 어디서 본 적이 있는 듯하다

 햇살은 줄이 막 끊어진 목걸이의 구슬처럼

 방문객의 얼굴 위로 한꺼번에 흩어졌다

 

 당신이 알고 있는 이들이 잠시 자리를 비운 것처럼 보였다

 그들은 돌아올 수 없는 사람들,

 당신을 여기로 오게 한 것은 무엇인가

 살지도 죽지도 않은 것들 때문에 해변은 아직 푸르고 아무것도 변한 게 없다

 

 문 안의 바다는 문 밖의 다른 바다들보다 강력했다

 달은 자주 이곳으로 끌려왔다

 그들이 없는 해변의 오두막은 모래와 낡은 시간만 수북하다

 누구도 해변의 죽음 따위는 오래 기억하지 않는다

 싱싱한 발자국이 하나 남아 있다

 

 

  『서정시학』2013년 겨울호

 

 

 

  - 1990년<한길문학>으로 등단. 시집<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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