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의 오솔길/신인상

2014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폴래폴래 2014. 1. 4. 12:01

 

 

 

 

 뱀을 아세요?

 

 

                                           - 윤석호

 

 

 뱀이 왜 기어 다니는지 아세요

 불안하기 때문이래요

 손발 없이 귀머거리로 사는 동물은 또 없거든요

 독이라도 품어야 살 수 있지 않겠어요

 얼마나 불안했으면 혀가 다 갈라졌겠어요

 남의 땅에 사는 것도 마찬가지예요

 

 혹시 은인을 찔러 죽인 전갈 이야기 들어 보셨어요

 본능을 장전하면 갈기고 싶어지죠

 본능은 의지보다 늘 앞서니까요

 하지만 본능보다 앞에 불안이란 게 있어요

 그래서 가장 위험한 것들은 불안해하는 것들이래요

 

 독을 품은 것들은 기억력이 없어요

 어느 한구석 오목한 데가 없기도 하지만

 사실은, 뒷걸음질 칠 수 있는 담력이 없어서래요

 이방異邦의 밑바닥에 몸을 대고 살다 보면

 굳이 시간을 되새기고 싶지는 않을 거예요

 

 간혹, 숨 막히게 달 밝은 밤이 있잖아요

 그런 날이면 통째 삼킨 먹이를 삭히며

 똬리를 틀어요 철이 든 거지요

 저도 한번 쭉 뻗고 살고 싶겠지요

 하지만 마음 놓치면 독을 품긴 힘들어져요

 무딘 칼은 피차 고통이거든요

 

 번질거리던 각질의 모서리가 굵게 갈라져

 살을 후비며 파고든 어느 밤

 제 살갗을 찢어 벗겨 내며 뿌리치고,

 쉼 없이 날름거리며 생을 지켜 냈어요

 이런 아침은 늘 뻐근해요

 눈꺼풀 없이 잔 눅눅한 잠을 말려야

 또 하루를 살아갈 수 있거든요

 하늘에서 가장 먼 쪽으로 붙어 다니지만

 햇살의 따스함을 알고 있나 봐요

 

 

 

 - 1964년 부산 출생. 부산대 기계공학과 졸업.

    현, 미국 시애틀 거주. 2011년 미주 중앙 신인문학상 당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