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침묵여관 / 이병률
폴래폴래
2014. 1. 3. 14:00
침묵여관
- 이병률
나는 여기에 일 년에 한 번을 온다
몸을 씻으러도 오고 옷을 입으려고도 온다
돌이킬 수 없으려니
너무 많은 것을 몰라라 하고 온다
그냥 사각의 방
하지만 네 각이어서 도저히 안 되겠다는 듯
제 마음에 따라 여섯 각이기도 한 방
물방울은 큰 물에 몰두하고
소리는 사라짐에 몰두한다
얼룩은 옷깃에 몰두할 것이고
소란은 소문에 몰두할 것이다
어느 이름 없는 별에 홀로 살러 들어가려는 것처럼
몰두하여
좀이 슬어야겠다는 것
그 또한 불멸의 습(習)인 것
개들은 잠을 못 이루고 둥글게 몸을 말고
유빙이 떠다니는 바깥
몰려드는 헛것들을 모른 체하면서
정수리의 궁리들을 모른 체하면서
일 년에 한 번 처소에 와서
나는 일 년에 한 번을 몰두한다
시집『눈사람 여관』문지 2013
-1967년 충북 제천 출생. 서울예대 문창과 졸업.
1995년<한국일보>신춘문예 당선.
시집<당신은 어딘가로 가려 한다><바람의 사생활>
<찬란><눈사람 여관> 현대시학작품상(2006)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