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시월 / 이기철

폴래폴래 2013. 10. 19. 12:08

 

 

 

 

 

 

 

 

  시월

 

                                      - 이기철

 

 

 ‘시월’ 하고 부르면 내 입술에선 휘파람 소리가 난다

 유행가 속으로 들어가고 싶은 맨드라미들이

 떼를 지어 대문 밖에 몰려와 있다

 쓸쓸한 것과 쓰라린 것과 서러운 것과 슬픈 것의 구별이 안 된다

 그리운 것과 그립지 않은 것과 그리움을 떠난 것의 분간이 안 된다

 누구나를 붙들고‘사랑해’라고 말하고 싶은 순간이

 이마에 단풍잎처럼 날아와 앉는다

 연록을 밟을 때 햇빛은 가장 즐거웠을 것이다

 원작자를 모르는 시를 읽고 작곡가를 모르는 음악을 들으며

 나무처럼 단순하게 푸르렀다가 단순하게 붉어질 수 있으면 좋겠다

 고요한 생들은 다 죽음 쪽으로 몸을 기울인다

 다녀올 수 있으면 죽음이란 얼마나 향기로운 여행이냐

 삭제된 악보같이 낙엽이 진다

 이미 죽음을 알아버린 나뭇잎이 내 구두를 덮는다

 시월은 이별의 무늬를 받아 시 쓰기 좋은 시간이다

 

 

 

 『현대시』2013년 10월호

 

 

 

 - 1943년 경남 거창 출생. 영남대 국문과 동 대학원 졸업.

   1972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열하를 향하여><지상에서 부르고 싶은 노래><유리의 나날> 등

   김수영문학상 등 수상. 영남대 교수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