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시월 / 장만호

폴래폴래 2013. 10. 17. 12:59

 

 

 

 

 

 

 

 

   시월

 

 

                                        - 장만호

 

 

 이제, 기다리지 않아도 저녁이 오고

 세계는 조금씩 녹슬어간다

 새들은 허공에 밑줄을 긋거나

 나무들 사이를 날아다니다

 먼 곳을 생각하며 서로의 깃을 고르고

 떨어진 깃털 하나

 저녁의 푸른 공기 속에 가라앉을 때

 나무들은 둥근 귀를 둥글게 열고

 잎 마르는 소리를 듣거나 멀리

 열매 떨어지는 소리를 뿌리로 듣는다

 그 뿌리 흔들리는 순간

 저녁은 어둠으로 녹슬어가고

 어둠은 모든 빛나는 것들을 빛나게 해

 등불이 등불을 부르고

 별들은 서로를 껴안고 성좌를 이룬다

 간혹 유성이 흐르기도 하지만 미동도 않는

 대지 위에서

 사람들은 불빛을 향해 흐르고

 나는, 사라진 것들과 사라질 것들을 생각하며

 옛 애인에게 전화를 한다

 

 

 

 시집『무서운 속도』랜덤하우스 2008

 

 

 

 - 1970년 전북 무주 출생. 고대 국어국문학과 동 대학원 졸업.

    2001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무서운 속도> 현재 경상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