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손수건 같은 건 갖고 다니지 않는다 / 이근화
아무도 손수건 같은 건 갖고 다니지 않는다
- 이근화
누군가 꽃을 던졌다
아니다
아무렇게나 구겨진 손수건이다
들러붙은 것은 무엇인가
폭설과 한파가 사나흘 이어졌다
길거리에 서 있는데 눈물 콧물 범벅이었다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
무엇도 하지 않았다
손수건 같은 것은 없었다
소매에 훔쳤다
더러움은 쉽게 용서가 된다
그냥 버스를 기다렸다
내가 모르는 버스
내가 영원히 알지 못하는 곳으로
나를 데려가줄 버스는 없다
버스의 천장을 뚫을 만큼 큰 사람도 없겠지
눈은 차고 더럽고 흩날린다
아무것도 덮을 수 없고 무엇도 쓸 수 없고 조금도 먹을 수 없다
유전자에 새겨진 과제를 수행하느라
과오를 반복하느라 오늘도 걷는다
내 발은 내 발이지
네 발을 밟을 수 있지
그런데 정말 내가 뭔가를 밟은 것 같아
무섭다 길 위에 떨고 있는 움츠린 전단지들
외로움을 단번에 박살내줄 수 있을 것 같아
꽃이 만발 들길 아니면 천길 낭떠러지
그것이 아니지
휘황찬란한 도시 불빛 속에서 눈송이 흩날린다
간결하고 깨끗하고 반듯한 것은 꽃잎이 아니지
바쁘게 사라지는 사람들 나를 통과하고
내 어깨에 눈 송이 몇 개가 녹겠지만
아무도 손수건 같은 건 갖고 다니지 않는다
『시와반시』2013년 여름호
-1976년 서울 출생. 단국대 국문과, 고대 대학원 국문과 졸업.
2004년『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칸트의 동물원><우리들의 진화><차가운 잠>
윤동주상 젊은작가상, 김준성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