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목향木香 / 김추인

폴래폴래 2013. 6. 26. 11:14

 

 

 

 

 

 

 

 

 

   목향木香               

         ─생명의 환幻

 

 

                                                    - 김추인

 

 

  악기장이 새끼 목수는

  다듬어지고 있던 벽오동 옆에서

  천천히 아주 천천히

  나무의 이야기를 듣는다

 

  한 생에서 다른 생으로 이입되는 생멸의 시간

  숲의 큰 작은 불안세계를 덮으며

  벼락 맞은 오동은 명금을 약속했다

 

  이윽고 가얏고가 제 울음을 짚어내는데 천년 나이테를 비워낸 나무의 울림통이

소리를 머금었다 토하는 가얏고가 톱날 같은 대팻날 같은 캄캄하게 헤집고 가던

소리의 기억을 마른 목질 아래 눌러두었던 산조 가얏고가 온몸을 흔드는 떨림으로

제 노래를 풀어내는데

  시김새가 기러기발을 줄줄이 꺾어 넘고 남지나해를 건너 두견 울음을 필사하던

손끝이 또 산맥 하나 더 넘어가는 동안 악공의 오음은 내내 진자줏빛이었다

 

  죽사리치는 견딤 없이 나무의 상처 속에서 어찌 용천하는 해율(海律)을 풀어낼 수

있으리

 

  한 아침이 지나고 또

  어느 먼 곳에서 오동 밑동 깊숙이 도끼날이 드는지

  전생의 숲에서 흐릿한 기억처럼 오는

  생목(生木) 향(香)

  나무의 이야기는 끊일 듯 끊일 듯

  소년에게서 어린 목수를 꺼내고 있었다

 

 

  『현대문학』2013년 6월호

 

 

  - 1947년 경남 함양 출생. 1986년<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모든 하루는 낯설다><전갈의 땅><프렌치키스의 암호>

    <행성의 아이들>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