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사탕공장 언니들과 함께 / 한세정

폴래폴래 2013. 5. 31. 11:35

 

 

 

 

 

   사진:네이버포토(네르프님)

 

 

 

  사탕공장 언니들과 함께

 

 

                                                 - 한세정

 

 

 언니들의 하루는 달콤한 사탕이지요

 풀풀 날리는 사탕가루는

 첫눈처럼 금세 사라지지요

 색색의 가루들이 녹을 때마다

 빈집을 지키는 아이들은

 사탕을 문 채 잠이 들지요

 지구는 공처럼 둥글다는데

 그래서 언니들의 사탕도 둥글다는데

 시곗바늘은 왜 같은 자리만 맴돌고 있나요

 너무 빠르거나 가볍게 구름은 지나가고

 다시 어린애가 된 노인들의 호주머니에는

 찐득한 사탕이 엉켜 있지요

 알록달록 회오리 무늬가 몰고 가는

 세상은 감미롭지요

 사탕이 녹을 때마다

 낯익은 얼굴과 이름이 휘발됩니다

 아무도 없는 정류장

 노인들은 사탕을 물고 방점처럼 앉아 있지요

 뻐근한 하악골 가득 밀려오는 얼굴들을 떠올리지요

 듬성한 이 사이에서 사라질 사탕을

 천천히 음미하지요

 바스락거리는 사탕 봉지마다

 반짝이는 눈동자가 담기는

 오늘 하루는 정말 달콤한 사탕입니다

 

 

 

 시집『입술의 문자』민음사 2013

 

 

  自序

 

 

 나의 손가락이 닿을 수 있는 곳과

 닿을 수 없는 곳

 당신의 눈에 담을 수 있는 것과

 담을 수 없는 것

 

 그리고 여기

 당신과 나의 행간(行間)을

 채울 입술들

 

 

 2013년 5월

 한세정

 

 

 

 - 1978년 서울 출생. 고대 국문과 대학원 박사과정 수료.

   2008년『현대문학』으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