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여여(如如) / 복효근
폴래폴래
2013. 5. 21. 13:04
여여(如如)
- 복효근
건너 건넛집 은행나무는 너무 커버려서
울안에 두기엔 너무 커버려서
톱으로 베어 넘기자니 집마저 부수겠기에
집주인 나무 아랫도리를 둘러 나무껍질을 도려내었다
그걸 모르고 봄이라고
뿌리는 샘물을 길어 나무 꼭대기로 밀어 올린다
그걸 모르고 봄이라고
나무 우듬지는 없는 샘물을 받아
어렵쇼, 새순이 돋는다
드러난 나무의 속살 위로
눈물인지 진물인지 젖어 흐르고
햇살이 붕대를 두르듯 다독이는 동안
모르는 새들이 날아와 운다
나무는
뿌리도 우듬지도 하던 일 할 뿐이다
서로가 죽음 쪽으로 조금 더 깊어졌을 뿐
언제나처럼 삶은 죽음과 동서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 집주인은 자신이 무엇을 하였는지 깨달을 틈도 없이
조금 더 무덤 쪽에 가까워졌을 것이다
그래서 나무의 상처는 모두의 것이기도 하고
어느 누구의 것이 아니기도 해서
빤히 아는 생과 사가 두루 눈부시었다
시집『따뜻한 외면』실천문학 2013.
- 1962년 전북 남원 출생. 전북대 국어교육학과 졸업.
1991년<시와시학>으로 등단.
시집<당신이 슬플 때 나는 사랑한다><버마재비 사랑><새에 대한 반성문>
<누우떼가 강을 건너는 법><목련꽃 브라자><마늘촛불>
편운문학상 신인상, 시와시학상 젊은 시인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