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화농의 봄 / 김춘리
폴래폴래
2013. 4. 23. 12:02
화농의 봄
- 김춘리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떨어진 것들을 상처가 내려다보고 있다
꽃들이 다래끼를 앓고 있다
납작한 돌멩이와 돌멩이 사이에 숨겨놓은 눈썹
발돋음하던 봄이 와르르 무너지면
눈썹이 묻어 있던 곳마다 꽃들이 진다
꽃의 입술, 바람을 물고 있는 떨림
가장 늦게 돋아난 가장 깊은 것들이 깜빡거리고 있다
꽃잎의 요의가 불편하듯 흔들려
봄의 내의를 서둘러 내리듯 눈썹 몇 개를 뽑는다
퉁퉁 부어오른 나무의 화농을 짜내고 있는 꽃송이들
먼 곳의 꽃들이 더 연연하다.
두꺼운 겉옷의 언덕을 넘어온, 제 색을 다 채우지 못한 눈 끝의 開花
소보록해진 눈꺼풀에 발기되는 봄
꽃이 피고 지는 밀실은 아무도 본적이 없어
가장자리만 붉었던 입술 멍하니 바라보는 순간
어깨위로 툭 떨어져버린 꽃
중심을 놓친 무게는 씨앗을 키운다.
꽃 진자리 찾지 못하는 안대를 한 봄이 아물고 있고
화농으로 그려진 꽃의 부적을 몇 겹으로 접고 있는
화전놀이 철.
시집『바람의 겹에 본적을 둔다』고요아침 2013
- 강원도 춘천 출생. 2011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당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