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오랑캐꽃 / 최서림

폴래폴래 2013. 4. 17. 17:06

 

 

 

 

 

 

 

 

 

   오랑캐꽃

 

                                            - 최서림

 

 

 모든 꽃은 다 꽃을 피운다

 바위취, 국수나무 같이

 그늘 밑에 자라는 것들도

 때가 되면 꽃을 피운다

 평생 남의 그늘에 가려

 영영 꽃이 없을 것 같은 생명들도

 언젠가는 꽃을 피워 올린다

 버려진 들판의 찔레꽃 냄새가

 담장 안의 장미꽃 향기를 감싸 안듯,

 이름이 뭣해서 불러주기도 민망한 쥐똥나무

 꽃냄새가 화장실 냄새를 덮어주듯,

 누군가를 위해 물길처럼 낮아지고

 남의 인생을 데워주기 위해

 불길처럼 굽어져 본 사람, 한평생

 남의 그늘에 가려 제 그늘이 없는 사람도

 이른 봄 오랑캐꽃처럼 꽃을 피워

 젖은 낙엽을 살짝 밀어 올릴 줄 안다

 하늘을 들어 올려 순간

 제 그늘을 희미하게 만들 줄 안다

 

 

 

 시집『물금』세계사 2010

 

 

 

 -1956년 경북 청도 출생. 본명(최승호)

   서울대 국어국문과, 동 대학원 문학박사.

   1993년<현대시>로 등단

   시집<이서국으로 들어가다><유토피아 없이 사는 법>

   <세상의 가시를 더듬다><구멍>

   현재 서울과기대 문창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