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칡 꽃 / 곽재구

폴래폴래 2013. 3. 18. 11:28

 

 

 

 

 

 

 

 

 

    칡꽃

 

                                        - 곽재구

 

 

 

 저녁 안개를 마시고

 어둠이 수묵처럼 풀릴 때까지

 도시형 버스의 손잡이에 흔들리며

 석간이 시민들의 포켓에 꽂힐 때까지

 돌아오는 가건물 낮은 처마마다

 우리들의 오랜 칡꽃은 피어 있다

 콜타르 배인 송판 내음

 고단하나 뜨거운 가슴으로 방에 들면

 소죽 쑤던 고향 토지면의 사랑채가

 손에 잡힌다

 그 무슨 혁혁한 의의로 가득 찬 멜통을 메고

 우리들은 이 공사장에 밀려왔는가

 휘청대는 가교 구멍 뚫린 철판 새로

 빛나는 인종의 시민들은 밀려가고

 어지럽게 칡꽃들이 눈앞에 날린다

 공민학교 이학년에 편입한 막내의

 눈 내리는 뜨거운 일기

 그러나 밑동 튼튼한 내 아우는

 산유화와 아메리카를 알고

 멜통에 채운 자갈들이 우르르 쏟아질 때

 거기 끓는 땀과 정직

 그런 푸른 하늘이 내 벗겨진 등마다

 굳어 있음을 나는 안다

 가난하나 오래 튼튼한 일모

 줄을 서서 노임을 받는

 우리들의 깨끗한 하늘에 칡꽃은 핀다

 콜타르 배인 송판 내음

 그 키 작은 양심의 문을 열고 들어서면

 어머니는 한 땀 두 땀

 수인형의 세계를 엮으시고

 내 사랑하는 아우의

 능숙한 산유화와 아메리카가 펼쳐지고

 고단한 내 의식이 토란국에 적셔진다

 고향 토지면의 보랏빛 산길에

 칡꽃들은 미치게 피어나고

 목조 단칸 우리 식구들의 칡꽃은 지금 잠들고 있다.

                                          

                                             <5월시 2집. 19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