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의 해산 / 김혜순
꽃의 해산
- 김혜순
꽃한테 꽃아 꽃아 얼마나 아팠니? 그렇게 묻지마. 저절로 힘이 몰려와. 파도가 칠 때처럼 밀려와. 얼마나 힘들게 힘이 밀려오는지 끙끙 거리면서 뭍으로 밀려가는 거, 매일 죽기 일보 직전까지 몰려가는거,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어디가 끝인지 허공이 허공을 낳아보려고 힘주는 기분 같은 거, 그러다가 갑자기 정지! 그 몇 초간 평온한 하늘, 푸른 섬에는 아기가 혼자 살고 있는데 그 아기를 데려와야지, 그런데 보이지 않는 힘이 다시 닥쳐오고, 붉은 허공이 붉은 허공을 싸지르려고 하는 거야. 삼 일 간 먹지도 자지도 않고 천둥치다가 목이 쉬어버린 거 같은 거? 꽃을 밑으로 낳으려고 해봐, 힘을 주는데 꽃이 피질 않아. 다리를 벌리고 부끄러워 죽을 지경인데, 넋이 빠져나가는 게 보이고, 그러다가 어쩌다가 피는 거지 뭐. 꽃아 꽃아 예쁜 꽃아 그러지마!
『문학과 의식』2013년 봄호
- 1955년 경북 울진 출생. 건국대 동 대학원 국문과 졸업
1979년『문학과지성』으로 등단.
시집<또 다른 별에서><아버지가 세운 허수아비><어느 별의 지옥>
<우리들의 陰畵><나의 우파니샤드, 서울><불쌍한 사랑 기계>
<달력 공장 공장장님 보세요><한 잔의 붉은 거울><당신의 첫> 등
김수영문학상, 현대시작품상, 소월시문학상,미당문학상 수상.
서울예대 문창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