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그 말(馬)을 생각하는 밤 / 이영옥
폴래폴래
2013. 3. 4. 12:20
그 말(馬)을 생각하는 밤
- 이영옥
나는 성산 일출봉 펜션 앞의 그 말(馬)이 꼭 광야를 달리고 싶을 거라곤 생각지 않아
단지 연출된 평화에 일조하는 그 말(馬)이 풀 뜯는 시늉을 하다 멀리 던지는 서글픈 눈
길을 알아 챈 것 뿐, 그 말(馬)은 오래전에 바람 속에 나부끼던 갈기의 기억을 조용히
접는 법을 알아낸 것 같았어 내가 누린 감정의 호사가 길들여진 복종이란 걸 알고 나니
길 잃은 방울 소리가 내안에서 쩔렁거렸어 비쩍 마른 뒷다리의 근육들은 마른풀을 씹
을 때마다 잔잔하게 물결쳤지 목울대로 넘어가는 것이 울음인지 풀인지 알 수 없었던
그때 눈치 없는 바람은 더없이 향기로웠지 접근금지 철조망은 근엄했어 그것도 강요된
침묵인지 알 수 없었지만 말야 어딜 가나 지속적인 불행은 물에 젖은 건초더미처럼 제
무게를 고집하더군 생각이 깊어진 밤바람은 온몸을 찢어 철조망의 성대를 살려 냈어 그
말(馬)은 무심한 눈을 들어 목책 밖에 있던 내게 긴 밧줄을 던졌지 말(馬)대신 나를 묶어 두고 웃자란 풀처럼 일렁이는 밤 속으로 또각거리며 사라졌어 내안에서 흩어졌던 방울
소리가 주섬주섬 그 뒤를 따라 갔지
웹진『시인광장』2013년 2월호
- 1960년 경북 경주 출생. 2005년,동아일보>신춘문예 당선
시집<사라진 입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