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꽃을 따는 손 / 김추인
폴래폴래
2013. 1. 11. 12:57
꽃을 따는 손
- 김추인
젊은 왕룽이 흙담 아래 쪼그리고 앉아
잘 발라 먹은 복숭아 씨앗 하나
흙에 묻는 것으로
꽃이 오고 꽃이 지고
길고도 난해한 한 사람의 생애가 시작되던 걸 안다
세상에 꽃이 오기까지
잘 여문 몇 개의 과실이 완성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꽃들이 져야 하는지를
꽃들을 따내야 하는지를 안다
잘 익은 복숭아를 씹으면 꽃을 따내는 손이 보인다
시집『행성의 아이들』서정시학 2012년
시인의 말
힐끗
눈만 마주쳐도
내 안으로 그렁그렁 들어오는 것들 있다
나, 그것들 다 품어 안지 못해도
내 감각이 그것들의 방언을 기억하고
입안에서 오래 궁글린다
어떤 것은 모래의 구음
어떤 것은 유리의 조각
혀가 베인다
2012년 9월
김추인
- 경남 함양 출생. 연세대 대학원(현대문학) 졸업.
1986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모든 하루는 낯설다><전갈의 땅><프렌치키스의 암호> 등 7집.
만해 '님' 문학상 작품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