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의 오솔길/신인상
2013년 경인일보 신춘문에
폴래폴래
2013. 1. 5. 12:40
2013년 경인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떠도는 지붕
- 장유정
바람으로 벽을 세운다.
해와 달을 훈제하는 뾰족한 꼭대기에는 바람의 뚜껑이 있다.
날씨 사이에 계절이 끼여 있는 벌판에
조립식 숨구멍을 튼다.
이것을 바람의 집이라 부르고 싶었다.
예각이 없는 벽,
구겨진 바람을 펴 문을 만든다.
환기창으로 들어 온 햇살은 시침만 있는 시간이 되고
불의 씨앗을 들여놓으면 집이 된다.
집에서 흔들리는 것은 연기뿐이라는 듯
발굽이 있는 흰 연기들이 꾸물꾸물 날아오른다.
한 그루 귀한 자작나무, 벌판의 한 가운데 서서 시계로 운영되고 있다 푸른
지붕은 바람의 소관이다. 반짝거리는 나무의 초침이다.
날아가도 재깍재깍 부속품들만 돈다. 흐린 날에는 시간도 쉰다.
빈집을 알리는 표시가 열려 있다
정착하는 곳마다 그 곳의 시간은 따로 있다
자작나무에 붙은 시간이 다 떨어지면 지붕을 걷고
게르! 하고 부를 때마다 게으른 잠이 눈에 든다.
바삭거리는 시간들이 날아간다.
집은 버리고 벽만 둘둘 말아 트럭에 싣는다.
떠도는 것은 지붕뿐이다.
- 1962년 평택 출생. 단국대 대학원 문창과 졸업.
2007년 경기사이버문학상 입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