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사과를 내밀다 / 맹문재

폴래폴래 2012. 12. 15. 12:37

 

 

 

 

 

 

 

     사과를 내밀다

 

                                              - 맹문재

 

 

 1

 골목길을 돌아 나오는데

 담장 가에 달려 있는 사과들이 불길처럼

 나의 걸음을 붙잡았다

 

 남의 물건에 손대는 행동이 나쁜 짓이라는 것을

 가난하기 때문에 잘 알고 있었지만

 한번 어기고 싶었다

 

 손닿을 수 있는 사과나무의 키며

 담장 안의 앙증한 꽃들도 유혹했다

 

 2

 콧노래를 부르며 골목을 나오는데

 주인집 방문이 열리지 않는가

 

 나는 깜짝 놀라 사과를 허리 뒤로 감추었다

 

 마루에 선 아가씨는 다 보았다는 듯

 여유 있는 표정이었다

 

 3

 감았던 눈을 떳을 때, 다시 놀랐다

 

 젖을 빠는 새끼를 내려다보는 어미 소 같은 눈길로

 할머니는 사과를 깎고 있었다

 

 나는 감추었던 사과를 내밀었다, 선물처럼

 

 

 

  시집『사과를 내밀다』실천문학 2012

 

 

 

  - 1963년 충북 단양 출생. 고대 국문과 동 대학원 졸업

    1991년<문학정신>으로 등단

    시집<먼 길을 움직인다><물고기에게 배우다>

    전태일문학상, 윤상원문학상 수상. 안양대 국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