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꽃 핀다, 꽃 피어난다 / 김경성

폴래폴래 2012. 7. 28. 07:50

 

 

 

 

 

 

 

 꽃 핀다, 꽃 피어난다

 

                                             - 김경성

 

 

 

 이미 꽃진 지 오래된 연밭을 찾아 나섰다

 다소곳이 고개 숙인 연잎들

 토굴에 들어가서 수행자가 된 연꽃 씨앗,

 제 몸 말리며 해탈의 경지에 이르렀을 때 토굴 밖으로 나올 수 있다

 몸속 깊은 방, 문 열어놓고

 진흙 속으로 떨어지는 뿌리의 긴 시간을 위하여

 연잎은 몸 꺾고

 둥근 잎 오므려서 몸의 소리로 장엄한 연주를 한다

 내밀한 향기로 울림을 주던 시간은 이제 없다

 사라지는 것들은 몸속의 것을 다 비워낸 후

 제 몸을 울려서 피 울음 같은 소리를 낸다

 적멸한다는 것은 저토록 진한 핏빛 눈물 말리는 것이었음을

 몇천 년 후 다시 맑은 연꽃잎 펼칠 수 있음을

 제 몸을 두드려서 내는 소리 연밭 가득 퍼지고

 그 소리 들으며 토굴 속 연꽃 씨앗

 하나 둘씩 진흙 속으로 뛰어 내린다

 씨앗 한 개 주워서 입술 대어본다

 천 년 후 어느 날 해질녘,

 은유의 바람으로 세상 적시고 있을 때

 꽃 핀다, 꽃 피어난다

 어화둥둥

 내, 꽃 입술 찍어놓은 연꽃 피어난다

 

 

 

 시집『와온』문학의전당 2010년

 

 

 

 

 - 전북 고창 출생. 2005년<예술세계> 2011년<미네르바>등단.

   시원문학, 우리시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