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배를 매며 / 장석남

폴래폴래 2012. 6. 22. 11:13

 

 

 

 

 

 

 

 

  배를 매며

 

                                       - 장석남

 

 

 

 아무 소리도 없이 말도 없이

 등뒤로 털썩

 밧줄이 날아와 나는

 뛰어가 밧줄을 잡아다 배를 맨다

 아주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배는 멀리서부터 닿는다

 

 사랑은,

 호젓한 부둣가에 우연히,

 별 그럴 일도 없으면서 넋놓고 앉았다가

 배가 들어와

 던져지는 밧줄을 받는 것

 그래서 어찌할 수 없이 배를 매게 되는 것

 

 잔잔한 바닷물 위에

 구름과 빛과 시간과 함께

 떠 있는 배

 

 배를 매면 구름과 빛과 시간이 함께

 매어진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사랑이란 그런 것을 처음 아는 것

 

 빛 가운데 배는 울렁이며

 온종일을 떠 있다

 

 

 

 『서정시학』2012년 여름호. 특집, 김달진문학상. 시

 

 

 

 

 - 1965년 인천 덕적도 출생. 인하대 대학원 국문과 박사과정 수료.

  198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

  시집<새떼들에게로의 망명><지금은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

  <젖은 눈><왼쪽 가슴 아래께에 온 통증><미소는, 어디로 가시려는가> 등

  김수영문학상, 현대문학상, 미당문학상, 김달진문학상 수상

  한양여대 문창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