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사랑, 그 맹목적인 / 박병란

폴래폴래 2012. 6. 16. 12:21

 

 

 

 

 사진:네이버포토갤러리

 

 

 

 

  사랑, 그 맹목적인

 

                                          - 박병란

 

 

 

 있잖아요

 오로지 너만을 위해 내민 간을 거절할 수 있나요

 맹목적인

 내가 노란 막걸리 주전자를 들고

 일급수 물에만 산다는 가재를 잡았을 때는

 병아리를 향한 사랑이라고 말했지

 내 집게손가락을 가재 집게손가락에게

 내어 줄때는 눈물이 찔끔 났지만

 서서히 발갛게 익어가는 가재를 보면서 통쾌했지

 너의 식사로 마당에 차려진 가재를 쪼아 먹는

 부리가 가재 집게보다 더 날카로웠지

 그래도 난 너를 사랑한다고

 맹목적인 게 뭔지 알지?

 가재 껍질까지 먹어치운 부리

 드디어 깃털아래 날개가 돋아나자

 닭이 된 널 할머니가 비틀었지

 뭐, 별거 아니었어, 목이 날아 갈까봐

 얘야 이건 간이란다

 골골한 너에게 보약이니 먹어두렴

 내 가재를 다 삼켰던 병아리가 내게 간을 선물한 날

 흰 살은 아버지가

 나는 간을 먹어치웠지

 

 내가 너에게 묻지 않아도 심장이 조여 왔지

 너의 눈빛만 떠올려도 명치 끝이 저려왔지

 사랑을 나눌 때 몰랐던 것이 돌아서야 비로소 밀려오는

 내가 사랑이라 말하지 않아도

 서로가 서로를 원하는 사랑이라는 이름

 

 

 

 시집『사랑, 그 맹목적인』발견 2012년

 

 

 

 

  - 1964년 포항 출생. 2011년 발견신인상 등단

    발견웹진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