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몸의 기억력 / 이주언

폴래폴래 2012. 4. 3. 11:44

 

 

 

 

 

 

 

  몸의 기억력

 

                                     - 이주언

 

 

 

 햇살이 은사처럼 감겨있는 목련나무의 몸에는

 이제 막 떠난 꽃잎의 몸이 선명하게 기록되어 있다

 첫 만남의 설렘과 하얀 웃음과 뾰로통한 향기가 나무의 껍질과 물과 자궁벽에 또렷이 새겨져 있다

 새의 발가락엔 꽉 붙잡았던 나뭇가지의 질감이

 내 몸에는 아버지에게서 풍겨나던 갯내음

 배를 쓸어주시던 할머니의 꺼칠한 손바닥

 네 몸의 문장들이 음각되어 있다

 

 몸이 받아 적은 것들은

 작은 파문이 일 때마다 절로 살아나

 천 년 전 주법을 기억하는 박물관의 악기처럼

 

 달빛의 어조로 바람의 문법으로 때론 칼금 무늬로 음각되어

 목련은 목련나무의 몸속에

 그들은 내 몸속에 욱신거리며, 있다.

 

 

 

 

  『시인시각』2011년 여름호

 

 

 

 

  - 1963년 경남 창원 출생

    2008년 <시에>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