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구름의 속도 / 조용미
폴래폴래
2012. 3. 12. 15:53
사진:네이버포토
구름의 속도
- 조용미
저 구름은 큰 유리창을 들여다보길 좋아한다
저 구름은 느리고 느리다
저 구름은 슬며시 사라지는 걸 좋아한다
너는 저 구름의 命宮을 보는 법을 어쩐지 알 것 같다
산봉우리에 삿갓구름을 종일 붙잡아 두고 꼼짝 못하게 하는 방법도 알 것 같다
때로는 새처럼 때로는 쥐처럼 사는 박쥐같은 어떤 마음을 너는 헤아릴 수 있다
해거름녘 짙어지는 저류지 물빛에 목화이불 솜뭉치를 빠뜨리는 구름의 심사도
너는 짐작한다
구름이 가라앉고 있다
구름이 쏟아지고 있다
구름의 말없음, 뭐라고 하겠는가
하얀 침묵이라 한다면 아직 구름을 모르는 것,
검은 침묵이라 한다면 구름을 오독한 것
앞산도 뒷산도 너울너울
큰 창도 작은 창도 아늑아늑
저 구름 속에 감추어 둔 실로폰 같은 빗소리를 너는 한동안 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그믐의 구름은 누가 보나 그믐의 달은 누가 만지나 너는 그믐의 구름을 뜯어 이불
을 한 채 지었다
구름은 따뜻하기도 하지
저 구름은 머무르기를 좋아하지, 달리기를 좋아하지
그러니 너는 구름의 말없음을 무어라 하겠는가
『서정시학』2012년 봄호
- 1990년<한길문학>으로 등단.
시집<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일만 마리 물고기가 山을 날아오르다>
<삼베옷을 입은 자화상><나의 별서에 핀 앵두나무는><기억의 행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