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두부 / 유병록
폴래폴래
2011. 12. 20. 13:05
두부
- 유병록
아무래도 누군가의 살을 만지는 느낌
따듯한 살갗 안쪽으로 심장이 두근거리고 피가 흐르는 것 같다 곧 깊은 잠에서 깨어날 것 같다
순간의 촉감으로 사라진 시간을 복원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두부는 식어간다
이미 여러 차례 죽음을 경험한 것처럼 차분하게
차가워지는 가슴에 얹었던 손으로, 이미 견고해진 몸을 붙잡고 흔들던 손으로
두부를 만진다
지금은 없는 시간의 마지막을, 전해지지 않는 온기를 만져보는 것이다
점점 사이가 멀어진다
두부를 오래 만지면
피가 식어가고 숨소리가 고요해지는 느낌, 곧 떠날 영혼의 머뭇거림에 손을 얹는 느낌
이것은 지독한 감각, 다시 위독의 시간
나는 만지고 있다
사라진 시간의 눈꺼풀을 쓸어내리고 있다
『詩로 여는 세상』2011년 겨울호
- 1982년 충북 옥천 출생. 고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201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