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落葉文 / 윤의섭
폴래폴래
2011. 12. 14. 10:52
落葉文
- 윤의섭
상황은 이렇다
벽을 타고 날아가던 낙엽이 그야말로
바싹 마른 낙엽이 벽에 붙어 떨어지지 않는 것이다
휘어진 엽맥과 사라진 생기 지난 날
태양을 받치고 폭우를 빗겨가게 했으며
그늘 펼쳐 영지를 뒤덮었던 숲의 부족
나뭇가지에서 떨어져 나가기 전에 이미 죽어버리는
잎들의 예언서엔 추락이라는 말이 없다
단풍으로 만장을 내걸고 나무는 풍장을 치르는 중이다
한차례 바람이 불어 지상으로의 이장이 펼쳐지면
낙엽 그토록 가벼운 운구
빗물 고인 웅덩이에서 별이 되기 전에
하염없이 구르다 구석에 쓸린 채 불이 되기 전에
떨어지다 처음 닿은 자리에서 낙엽은 문득 깨어나는 것이다
살길은 바람의 방향으로 나있다
더 이상 갈 곳 없을 때까지 거리를 몰려다니며
불안에 떨며 소스라치며 곤두서며
벽에 붙은 낙엽의 공포가 엽맥을 타고 흐른다
이미 죽은 것들은 산 것이 무섭다
바람에 휩쓸리며
낙엽들은 추락 이후에 대한 긴 문장을 휘갈긴다
『시와사람』2011년 겨울호
- 1968년 경기도 시흥 출생. 아주대 국어국문학과 동 대학원 박사
1992년<경인일보>신춘문예, 1994년<문학과 사회> 등단.
시집<말괄량이 삐삐의 죽음><천국의 난민><붉은 달은 미친 듯이 궤도를 돈다>
<마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