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겨울 / 김수우
사진:네이버포토갤러리
붉은 겨울
- 김수우
거대한 등들이 너울거립니다
포장마차 붉은 천막
국수국물 놓고 앉은 소줏병이 풀럭댑니다
자정을 넘는 깊은 산마루들
꾸부정한 사랑은 늘어난 빚돈만큼 어질하고
다시 꾸는 꿈은 수취인 불명만큼 해쓱해
퇴화된 것들이 처음처럼 문득 돌아오는 바람 속
혼불 울렁이는, 사소한 아비들
하늘 끝에서도 잘 보이는 창문입니다
먼데서 바라볼수록 살아, 깜박이는 꽃술
아침마다 빈 자본을 경영하기 위해 침몰해야 할
유난히 붉은, 하늘주전자가
너울거립니다
시집『젯밥과 화분』신생 2011년
시인의 말
내 언어들이 제사일 수 있을까.
하다못해 지극한 맨발일 수 있을까.
제의를 잃어버린 시대,
모든 귀신들이 그립기만 하다.
헛젯삿밥 같은
빈 화분만 매일 늘어간다.
그래도, 그래도, 그래도,
자꾸 중얼거리면
혹 그대를 만날 수 있을까.
불행한 사치에 지불하는 절대적 비용,
그대.
2011. 칠월. 백년어서원에서
김 수 우 합장
- 부산 출생. 1995년 <시와시학> 등단. 경희대 대학원 국어국문과 졸업.
시집<길의 길><당신의 옹이에 옷을 건다><붉은 사하라>
사진에세이<하늘이 보이는 쪽창><아름다운 자연 가족><지붕 밑 푸른 바다>
산문집<씨앗을 지키는 새><유쾌한 달팽이>
2005년 부산작가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