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발굴 / 정채원
폴래폴래
2011. 9. 6. 22:16
발굴
-정채원
당신의 블로그도 발굴될지 모른다
수 천 년 뒤
먼 이국의 지하묘지에서 발굴된
벽화 속 어떤 개종한 사도처럼
한 쪽 어깨가 무너져나간 채
쉬지 않고 이야기하는 그를,
곱슬머리와 부리부리한 눈망울로
누군가를 삼킬 듯한 그를
사람들은 복원해내고야 말 것인가
밤새워 써 보낸 메일을 발송 취소하는 당신의 정오
어쩌면 은전 몇 닢을 두고 다른 사도와 언쟁 중이었을지도 모르는,
어쩌면 어린 창녀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중이었을지도 모르는 그를
왼쪽 뺨을 맞으면 오른쪽 뺨을 내밀라는 그로
어떤 탕자도 돌아오면 맨발로 뛰어나가 맞아주라는 그로
사람들은 복원해내고야 말 것인가
만개한 유채꽃밭을 배경으로 찡그린 듯 웃고 있는 당신을
새로 포스팅하는 한밤중
불그스름한 미간을 긁어내면
개종의 알뿌리를 캐낼 수 있을까
무늬 살아 있는 왼쪽 주머니를 들추면
꼬깃꼬깃한 서신 원본이 들어 있을까
그가 들어 올린 한 쪽 손은
수 천 년 손사래 치는 건지도 모른다
어둠 속에 모든 짐 내려놓은 그를
어떤 복음으로도 깨우지 말아달라고
어떤 거룩한 표지로도
오래된 슬픔을 출력하지 말아달라고
『문학청춘』2011년 가을호
- 서울 출생. 1996년 문학사상으로 등단.
시집<나의 키로 건너는 강><슬픈 갈릴레이의 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