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할미꽃 어머니 / 황봉구

폴래폴래 2011. 8. 10. 13:22

 

 

 

 

 

 할미꽃 어머니

 

                                  - 황봉구

 

 

 

 정이 희박했던 공해의 틈바구니

 아버지 산소 자락에서

 시들던 할미꽃

 모셔온 지 서너 해

 

 살아날까

 병치레 삼년에 효자 없다는데

 마당 한구석에서

 용케도 버텼다

 

 속곳 기저귀를 벗겨내는

 봄바람에 두 발을 오므리고

 고개마저 돌리던 할미꽃

 

 지린내 속살이 부끄러워도

 그만 눈을 감고

 팔십 평생 한겨울을

 환한 햇살 목욕물에 풍덩 빠트렸다

 

 자색 봉오리엔

 여리고 노란 꽃술이

 아직도 족두리 새 각시인데

 

 볼썽 궂은 흰 머리

 아들의 손길까지

 휘파람새 봄바람을 탔다

 

 

 

 

 시집『물어뜯을 수도 없는 숨소리』서정시학 2011년

 

 

 

 

 -1948년 경기 장단 출생. 서울대 독문과 졸업

   2000년『시와시학』으로 등단.

   시집<새끼 붕어가 죽은 어는 추운날><생선가게를 주제로 한 두 개의 변주>

   산문집, 음악 에세이, 여행기 등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