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 이야기 / 이화은
골목 이야기
- 이화은
접은 군용 담요 한 장만한 그늘을 깔고 그가,
그녀가 붉은 고무 다라이를 내려놓으면
새로운 비린내로 좁은 골목이 출렁이기 시작한다
가까이 큰 슈퍼가 생기고 자주 목이 잠기는 골목
목 쉰 확성기도 없으니
제주도 갈치도 주문진 오징어도 제 철 꽃게도
스스로 제 이름을 크게 불러야한다
귀 밝은 행인들한테만 생선을 파는 그가 그녀가
남자일까 여자일까
갈치등처럼 편편한 가슴과 엉덩이는 남자라고 하는데
가늘가늘 겨우 끌려나오는 낚싯줄 목소리는 분명 여자다
어떤 이는 아저씨께 또 어떤 이는 아줌마한테
생선을 사고 거스름돈을 받는다
손님들의 호기심이 비린내를 내리치는 칼등에
잠시 반짝이기도 하지만 그는 그녀는
늘 웃는 게 대답이다
어쩌면 저들은 암 수 한 몸인지도 몰라
아들과 딸을 언니와 오빠를
아버지와 엄마를 한 몸으로 다 살아내야 하는
지폐처럼
한 이름으로 접을 수 없는, 편안하게
만 원짜리도 천 원짜리도 될 수 없는,
빈 다라이에 남은 비린내와 깔고 앉았던 그늘을 접어 담고
그가 그녀가 떠난 자리에
가끔은 늦은 비가 들기도 하는데
비가 비를 불러 아주 비 오는 날은
그도 그녀도 오지 않고
민달팽이처럼 골목이 혼자서 비 비린내를 밀고 있다
『현대시학』2011년 5월호
- 경북 경산 출생. 인천교대, 동국대 대학원 문창과 졸업.
1991년『월간문학』신인상 등단
시집<이 시대의 이별법><나 없는 내 방에 전화를 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