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문씨네 가계 고뿔 걸린 문설주 / 김윤이

폴래폴래 2011. 4. 25. 12:10

 

 

 

 

 

 

 문씨네 가계 고뿔 걸린 문설주

 

                                                    - 김윤이

 

 

 

  뚝뚝 수돗물 소리 밤을 흠뻑 적셔도 굽은 잠을 자는 식구들 애벌빨래처럼 하루의 노독을 꾸덕꾸덕 말린다 마당을 가로지른 빨랫줄은 추위를 참으며 빨갛게 얼어간다 맵찬 바람에 문설주가 한밤내 아근바근 벌어지고 있다

 

  할머니 잇바디에서 새어나온 바람은 윗방 문설주 틈 사이로 분다

 

  고뿔 앓는 밤, 어린 고양이로 가르랑거리다가 얼마나 추운 길 걸어왔는지 여닫이 문고리를 잡는다 웅웅 앓는 소리가 차가운 방고래 맴돌아나간다

 

  간밤 화장실 곁 움파는 푸릇하니 살아 있고 아버지 미어진 구두 수가 늘어나 있다 발목에 차이는 언니의 복사뼈 불거져 뜨겁다 새벽녘 수돗물 소리 여전히 쿨룩대도 창가에 놓인 미나리 순은 겨우내 문씨네 가족의 입김으로 눈을 틔운다 한차례 재벌빨래를 더 해야 한다 하, 금간 하늘을 붙잡고 눈이 오고 있다

 

 

 

 

 시집『흑발 소녀의 누드 속에는』창비 2011년

 

 

 

 

 

  - 1976년 서울 출생.

     2007년『조선일보』신춘문예 당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