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붉은 심장들 / 이영춘
폴래폴래
2011. 4. 24. 09:57
사진:네이버포토갤러리(터닝마린)
붉은 심장들
- 이영춘
아버지가 키우던 소 여덟 마리를 엄동에 묻었다
하늘이 쩍쩍 갈라지는 언 땅에
꿈-벅 꿈-벅 눈 뜨고 우는 소들을 순장하였다
아버지의 어머니를 잃고 아흐레 장을 치르던 장삿날보다
그 울음소리
흥건하다
씨앗소를 위해 여물 끓이던 가마솥은
우물우물 여물을 씹던 소들의 눈보다
깊다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란 놈은 개선장군처럼 우두커니 소 우리에 내려 와 앉아
어둠을 파 먹고
아버지와 소를 송두리째 지우고 간 긴-어둠은
느리게 느리게 적막을 걸어 나간다
아버지와 소가 순장된 구덩이에서는 연일
벌건 핏물이 흐른다고 TV화면은 붉은 심장을 꺼내 흔들어대고
어머니는 화면을 향해 숟가락을 던진 채
땅바닥에 쓰러진다
전쟁이다
목숨 가진 것들의 마지막이란 이렇게 피 흘리는 일인가
한 치 망설임도 없이 내가 먹었던 살(肉)들이 일제히 일어나
방안 가득
붉은 피를 쏟아 낸다
웹진『시인광장』2011년 5월호
- 강원 평창 출생. 경희대 국문과 동 대학원 졸업.
1976년『월간문학』등단.
시집<시시포스의 돌><시간의 옆구리> 등 8권
윤동주문학상, 경희문학상, 강원도문화상, 대한민국향토문학상,
시인들이 뽑은 시인상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