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얼굴의 탄생 / 이현승
폴래폴래
2011. 3. 25. 13:28
사진:네이버포토갤러리
얼굴의 탄생
- 이현승
아무리 거대한 풍선일지라도
바늘 끝만큼의 면적이면 충분하다.
얼음 아래로 지나간 물고기 그림자처럼
터지기 직전의 풍선에는 어떤 표정이 있다.
잔뜩 피가 몰린 얼굴로
아이가 풍선을 불 때
두 손으로 귀를 막고 눈을 감은 채
풍선의 표정으로
우리는 무엇을 기다리는가.
일촉즉발이란 이미 충분하다는 말.
바늘만큼도 더할 수 없다는 뜻.
단 한 호흡의 공기면 족하다.
번개가 치고 천둥을 기다리는 몇 초의 하늘.
제 소리에 놀라 잠시 울음을 멈춘 아이처럼
최초의 폭발과 다음 폭발 사이의 분화구.
지진과 해일의 사이의 해안가.
붉은 눈물들은 실금을 채우며 넘친다.
검은 구름들이 마침내 중력을 얻는다.
『서정시학』2011년 봄호
- 2002년『문예중앙』등단
시집<아이스크림과 늑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