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장미수 만드는 집 / 유미애

폴래폴래 2011. 3. 23. 16:45

 

 

 

 장미수 만드는 집

 

                                   - 유미애

 

 

 옛집 감샤르*가 신기루처럼 떠 있던 시절

 나는 새의 저녁을 훔친 죄로 형틀에 묶여 있었던 것

 고하노니

 나는 저녁에 우는 새와 비린 복숭아뼈를 가진 장미나무일 뿐

 이 성의 오래된 발작과 고열을 지켜온 건

 병사들 몰래 피어난 처녀들과 순수한 혈통 덕분

 장미의 이름으로 할미는 꽃의 목을 잘라 솥에 던지고

 어미는 초록의 문자들로 불을 지펴 즙액을 짰던 것

 고하노니

 한 잔의 피를 홀짝이며 나는 장미의 경전을 넘겼던 것

 처녀들의 이름을 거두며 노래를 불렀던 것

 위대한 꽃말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온몸의 레이스를 깁는 동안 한 생이 흘러갔던 것

 고하노니

 마루메죤**의 가마솥은 저녁 새와 할미마저 삼켰던 것

 나는 사막의 붉은 시간에게 몸을 맡겼던 것

 천천히 오아시스의 아침과 복숭아향 체취를 잊어갔던 것

 장미의 칼날이 쇄골 뼈에 박혀 와도 내겐 더 이상

 신성한 사냥감과 흘릴 피가 모자라 레이스를 벗기면

 마지막 책장을 열고 끼룩끼룩 뱀 한 마리 울었던 것

 고하노니

 나는 어느새 유혈목이보다

 슬프고 유려한 꽃의 문장을 읊고 있었던 것

 

 

 

 * 장미수 만드는 곳으로 유명한 이란의 마을.

**나폴레옹의 왕비 조세핀이 머무르던 궁. 조세핀은 장미 수집

   광이었다고 함.

 

 

 

 

 시집『손톱』문학세계사 2010

 

 

 

 

  - 경북 문경 출생.

    2004년『시인세계』신인상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