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파람새 둥지를 바라보며 / 유하
사진:네이버포토갤러리
휘파람새 둥지를 바라보며
- 유하
대나무숲, 휘파람새 둥지를 바라본다
저 바람 속 모든 새집은
새라는 육체의, 타고난 휘발성을 닮아 있다
머물음과 떠남의 욕망이, 한 순간
망설임의 몸짓으로 겹치지는 곳에서
휘파람 소리처럼 둥지는 태어난다
새는 날아가고
집착은 휘파람의 여운처럼
둥지를 지그시 누른다
매혹의 고통은 종종
새의 가벼운 육체를 꿈꾸게 한다
하여 나의 질투는 공기보다 가볍다
난 사랑하고 있으므로, 사라지고 싶은 것이다
휘파람새가 비상하기 직전의 날개,
그 소리없는 찰나의 전율을 빌려
난 너의 내부에 둥지를 튼다
거미 여인의 키스
나방이 날아간다 불빛의 퇴폐를 향하여
날개의 상투성이 견딜 수 없는 것이다
거미 여인의 키스, 저 죽음과 바꾸고 싶은!
더 이상은 자기 육체가 아닌 곳으로
내려가고 싶다, 악수하라 몸의 빗장 밖에 서 있는
매혹의 악령이여, 나방이 날아오고
관능의 침묵 끝에 매달려 거미 여인이 웃는다
긴 독사 혀의 외줄을 타고 삶의 절정을 맛보듯
죽음을 위반하세요, 당신은 아주 즐겁게
파먹힐 거예요 은빛 그물은 광기의 그리움,
생이 엎질러진 곳에 생이 있어요, 그의 광기가
마침내 중독된 삶의 권태를 살해하리라
거미 여인의 날카로운 키스여, 나방이 날아간다
일상의 어둠 저편으로 날개의 족쇄를 내던지며,
식욕의 殺意가 빚어낸 저 황홀한 무늬의 퇴폐,
끈끈한 덫의 은빛 유혹 속으로
- 유하(본명 김영준)
1963년 전북 고창 출생. 세종대 영문과, 동국대 대학원 영화과 졸업.
1988년『문예중앙』등단.
시집<무림일기><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
<세상의 모든 저녁><세운상가 키드의 생애><천일馬화>
산문집<이소룡 세대에 바친다> 등
'21세기 전망' 동인. 영화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