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의 오솔길/신인상

팽나무 / 김수정

폴래폴래 2011. 2. 26. 11:44

 

 

 사진:네이버포토갤러리

 

 

 

  21세기문학 신인상 당선작

 

 팽나무

 

                      - 김수정

 

 

 

 단청이 벗겨진 대웅전 모퉁이,

 늙은 팽나무는 한쪽 귀만 열어 두었다.

 이끼가 잔털처럼 세파를 걸러주는

 울퉁불퉁 길쭉한 귓속,

 이따금 호기심 많은 동자승이

 겹겹이 쌓인 운지버섯 귀지를 파주면

 귓불을 움찔거리며 시원타 한다.

 귓구멍으로 일개미가 수시로 들락거리고

 슬픔을 물어온 두견새가 한나절 울다 가면

 정수리 한 귀퉁이가 콕콕 쑤시기도 하련만,

 내색을 않는 팽나무 보살.

 이 절과 함께 늙어온 사람들은

 백팔 배 후에도 못내 버리지 못한 마음을

 팽나무 귓가에 쏟아놓곤 하지.

 낡고 서럽고 자그마한 이야기들은

 외이도外耳道처럼 좁고 긴 뿌리를 지나

 칡넝쿨 우거진 계곡 물소리로 흘러

 아무도 그 사연을 알아차리는 이가 없다.

 입이 무거운 도반이 다녀간 후에는

 듣는 귀밖에 없는 보살님 귓속이

 더욱 넓고 깊어진다.

 

 

 

 

 『21세기문학』2011년 봄호

 

 

 

 

  - 1969년 대구 출생. 경북대 사범대학 지리교육과 졸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