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붉은 염주 / 안차애

폴래폴래 2011. 2. 13. 12:34

 

 

 사진:네이버포토갤러리

 

 

 

 붉은 염주

 

                          - 안차애

 

 

 

 올해 텃밭 농사로는 고추가 환상이었다

 여름내 된장에 생으로 찍어 먹고, 삼겹살 위에 고명으로 얹어 먹고

 숨구멍을 내어 초절임 항아리를 가득 채우고도 남아

 고슬고슬 잘 말려 태양초 몇 줌 보태기로 한다

 

 무명실에 시침바늘로 꾹꾹 꿰어 베란다에 몇 줄 걸고 보니

 성성한 기골과 환한 물색을 바짝 줄일 일이 난감하다

 결국 물기와의 전쟁인 것이다

 선연한 색을 버리는 것은 일렁이는 기억들을 걷어내는 것이다

 울퉁불퉁거리는 근육질을 들어낸다는 것은

 줄어들지 않는 욕심들을 지워내는 일이다

 

 부패는 언제나 무른 내부에서 온다

 쉽게 부풀어 오르는 몸을

 왕소금 빛 햇살에 깊이 절여야 한다

 자주 일렁이는 물 기운은

 칼칼한 가을바람에 털어내야 한다

 

 한 보름 햇살 염장, 바람 풍장 되고 나면

 남은 몸에 각이 잡힐 것이다

 눅고 깔아졌던 몸이 다시 뼈로 일어서면

 붉은 빛은 색을 넘고,

 매운 내는 향을 넘을 것이다

 

 붉은 염주,

 밍밍한 맛이거나 심심한 생(生)에

 보석처럼 알알이 박힐 것이다

 

 

 

 

  『시에』2010년 가을호

 

 

 

 

  - 1960년 부산 출생. 부산교대 졸업.

     2002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불꽃나무 한 그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