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저녁의 고양이 역 / 손순미
폴래폴래
2011. 1. 31. 11:39
사진:네이버포토
저녁의 고양이 驛
- 손순미
오래된 지붕은 비밀스럽다 회의가 있는 것처럼 검은 정장의 고양이들이 지붕 위로 모여든다 옥상의 화분들은 따분한 곰팡이 꽃이나 피우고 있고 바람은 지붕과 방으로 통하는 전선의 가는 허리를 희롱하며 논다 빨래들은 그래도 말이 없는 편이다
언젠가 남자가 싸움 끝에 던진 구두 한 짝에는 아직도 남자의 욕이 들어있다 화가 난 욕은 이자처럼 불어나 있다 비밀은 그렇게 태어나는 것이다 참을 수 없어 지붕을 뚫고 올라온 나무에는 꽃대신 햇볕이 피어나고 고양이들은 남아 있는 지붕의 추억을 의논하며 근엄하게 놀고 있다
여자의 고함소리가 다시 지붕을 흔든다 남자가 익지도 않은 욕을 집어던지는 모양이다
창문이 부르르 떠는소리 들린다 비밀은 그렇게 또 지나간다 아무런 보상이 없는 삶처럼.
『현대시학』2011년 1월호
- 1964년 경남 고성 출생. 경성대 국문과, 고대 대학원 문창과 재학
1997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현대시학 등단
시집<칸나의 저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