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언 숲 / 정영
폴래폴래
2011. 1. 25. 20:40
언 숲
- 정영
새벽이면 붉은 동굴에서 뱀들이
혀를 깨물고 죽는다
뼈가 자라거나 살이 얼어붙어
더 이상 똬리를 틀 수 없게 된 취한 뱀들이
아스팔트에 별무리처럼 누워 있다
혀를 늘어뜨려도 되는 삶이란 얼마나 평온한가
온몸에 독을 품어야 하는 삶이 독이었으므로
제 이빨의 독을 제 몸에 퍼뜨리는 이 성스러운 행위는
인류의 축복 목록에 기록되리
언 숲에서 빠져나온 뱀들이 칼바람 부는 강변도로에서
제 눈물의 온기로 몸을 데우며 행렬을 이을 때
별들은 제 스스로 툭툭 깨지고
하늘은 쩡쩡 소리를 내며 갈라진다
뛰지 않아도 되는 삶이 쉬운 건 아니었다
먼 숲에 무슨 일 있는지
쩍쩍 갈라지는 소리 들려오고
또다시 밤이 찾아오고
뱀들은 겨드랑이에 보이지 않는 팔을 묻고
아이처럼 잠든다
언 숲에서
얼음을 씹으며 눈 밝은 사람으로 태어나길 꿈꾼 적 있다
『현대문학』2010년 10월호
- 1975년 서울 출생
2000년 <문학동네> 등단
시집<평일의 고해> 창비 2006